1. 피나 바우쉬
춤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녀!
피나 바우쉬(Pina Baussh)는 1940년 독일의 북부 작은 도시 졸링겐(Solingen)에서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그 덕분에 그녀의 어린 시절은 식당 한 구석에서 방문객들을 감상하거나 춤을 추거나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식당에 울려퍼진 음악과 함께 그 공간에서의 즐거움, 행복 그리고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이 모습들은 이후에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며 그녀의 작품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피나 바우쉬는 에센의 폴크방 스쿨(Folkwang School)에서 독일을 대표할 수 있는 표현주의 무용가 쿠르트 요스(Kurt Joose)의 사사를 받게된다. 쿠르트 요스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피나 바우쉬는 폴크방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미국 줄리어드 스쿨에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다. 피나 바우쉬는 2년 반의 유학생활에서 마치고 독일로 돌아와서 폴크방 무용단의 주역무용수로 활동하며, 1968년에는 그녀가 안무한 <단편(Fragment)>이라는 작품으로 안무가로 데뷔하게 된다. 피나 바우쉬는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퀼른 콩쿠르에서 <시간 바람속으로(In Wind der Zeit)>라는 작품으로 1위를 하게면서 안무가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피나는 안무가로의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고, 1973년 부퍼탈 시립공연장의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취임하게 되었다. 피나는 부퍼탈 시립공연장의 발레단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라 바꾸고 지방 소도시의 작은 무용단을 세계적인 무용단 반열에 올려놓으며 무용계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괄목만한 작품을 안무했던 그녀는 무용계에서만 의미 있는 작업들을 한 것이 아니였다.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그녀의 영향력을 미쳤는데 음악, 연극, 오페라, 영화를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에서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며 많은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안무가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들을 이어가던 피나 바우쉬는 그녀를 대변해주는 '탄츠테아터'라는 장르를 통해서 세계 무용계의 판도를 바꾸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부퍼탈 탄츠테어터'는 세계 여러 나라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몇차례의 내한공연을 통해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며 우리나라 안무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적인 무용단을 이끌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피나 바우쉬는 암 선고를 받은지 단 5일 만인 2009년 6월 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세계 공연계에 비보를 전했다.
2. 피나 바우쉬의 작품 스타일
피나 바우쉬(Pina Baussh)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예술감독이 된 후 이전의 무용작품에서 추구하던 모든 관습과 전통을 깨며 음악, 연극, 미술, 무용, 영상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결합시키는 탈장르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물론 모든 혁명적인 예술가가 그렇듯 피나 바우쉬도 대중들에게 처음부터 인정을 받게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작품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관객은 그녀의 작품을 보던 중 객석을 박차고 나가거나 야유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무용의 개념을 깨는 그녀의 작품은 몇몇의 당대의 유명했던 연출가와 예술가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피나 바우쉬(Pina Baussh)만의 작품들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치게 되었다.
피나 바우쉬(Pina Baussh)는 작품에서 끊임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문제와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을 해봤을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관객들에게는 작품을 통해서 고민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피나 바위쉬(Pina Baussh)는 작품에서 함께 했던 무용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무용수들의 개인적인 체험을 모티브로 삼고 움직임으로 표출할 수 있게함으로 무용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피나 바우쉬(Pina Baussh)는 이전의 많은 안무가가 사용했던 무대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관람객들이 앉아 있는 관객석과 무용수들의 공간인 무대라는 공간을 새롭게 활용하고 있다. 무용수들을 객석과 무대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게하거나 관객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면서 관객과 무대와의 공간을 좁히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는 연극적인 연출을 사용하여 연극적인 요소인 언어를 사용함으로 움직임을 극대화시키는 표현수단으로 사용한다. 또한 미술에서 많이 사용되는 꼴라주방식(오려 붙이기)을 사용해서 짧은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배열하여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더불어 무대에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거나 실제 장소를 그래도 재연하거나 실물크기의 소품을 재현해 놓는 방식을 통해 시각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3.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해줬던 피나바우쉬
마리 뷔그만의 표현주의 현대무용의 맥을 잇고 있는 피나 바우쉬(Pina Baussh)는 마사 그라함 스타일이 점령했던 우리나라의 현대무용계에 큰 획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마사 그라함의 스타일을 뿌리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1980년대, 1990년대 현대무용은 움직임이 주가 되어 작품이 만들어져야만 했다. 그래서 작품은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난해했고, 추상적이라서 무용이라는 예술장르는 일반인들이 가까이하기에는 어려운 예술장르라는 선입견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다양한 해외무용단의 기획 공연의 유치와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을 통해 유럽 스타일의 현대무용을 접하게 되면서 많은 안무가들의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유행에 민감하고 현대적인 것을 찾는 현대무용의 특성상 많은 안무가들이 이러한 국내 및 국외 무용단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많은 안무가들이 움직임을 통해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무용예술 특성상 움직임이 표현의 주가 되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런데 피나 바우쉬(Pina Baussh)의 작품을 접했던 우리나라의 현대무용 안무가들은 그녀가 만들어 낸 새로운 형식의 작품 스타일을 통해 그러한 강박을 조금씩 떨쳐버릴 수 있게 된다. 그 영향으로 작품의 형식은 더 다양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신체극을 표방하는 연극단체, 무용극을 하는 무용단체 등이 창단되어 움직임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피나 바우쉬(Pina Baussh)의 작품을 보면 이것이 연극인가 무용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연극과 영화 작품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대사가 무용작품에서도 등장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무용은 추상적이다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관객들에게 무용도 타 공연예술장르처럼 직접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해서 공감하기 쉬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줬다.
2009년에 타계한 피나 바우쉬(Pina Baussh)의 작품들은 부퍼탈 댄스 시어터를 통해서 여전히 공연되어지고 있고 피나 바우쉬(Pina Baussh)의 안무 방식은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흘러 피나 바우쉬(Pina Baussh)가 과거에 한 획을 그었던 안무가로만 무용사에 기억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안무가들은 무용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시도의 문을 열어줬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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